「Mesmerizer」와 보컬로이드의 뉴웨이브: 한 곡이 스타일, 스토리텔링, 애니메이션을 다시 쓴 방식
보컬로이드 곡 「Mesmerizer」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최면을 주제로 한 콘셉트와 영화적인 가사, 그리고 아트 중심의 MV가 어떻게 더 어둡고 서사 중심의 보컬로이드 음악·비주얼 시대를 여는 데 기여했는지 살펴본다.
「Mesmerizer」와 보컬로이드의 뉴웨이브: 한 곡이 스타일, 스토리텔링, 애니메이션을 다시 쓴 방식
보컬로이드는 언제나 실험을 위한 놀이터였다. 귀여운 팝 앤썸부터 서늘한 발라드, 강렬한 EDM 트랙까지, 이 씬은 프로듀서·일러스트레이터·애니메이터 사이의 끊임없는 교류 속에서 진화해 왔다. 그런데 가끔씩은, 그 문화를 그냥 함께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재편하는 작품이 등장한다.
「Mesmerizer」는 그런 곡 중 하나다.
뉴웨이브(New Wave)에서 영감을 받은 일렉트로닉 사운드, 어둡고 영화적인 분위기, 그리고 스토리 중심의 뮤직비디오를 결합한 「Mesmerizer」는 보컬로이드 프로젝트가 도달할 수 있는 기준선을 새로 세웠다. 단지 중독성 있는 멜로디를 들려준 것이 아니라, 서사적 밀도와 비주얼 연출, 실험적 스타일에 대한 기대치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이 글에서는 「Mesmerizer」가 음악으로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가사와 영상이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 최근 보컬로이드 문화의 진화를 이야기할 때 자주 하나의 전환점으로 언급되는지 살펴본다.
주의: 「Mesmerizer」와 관련된 제작자, 크레딧, 제작 참여 역할은 배포 버전과 플랫폼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공식적인 표기가 존재하는 경우, 반드시 원본 업로드 페이지의 크레딧을 우선적으로 참고하길 바란다.
핵심 콘셉트: 최면, 도피, 그리고 정체성
「Mesmerizer」는 단 하나의 강렬한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회전한다. 바로 최면 같은 도피 욕망의 유혹이다.
가사 레벨에서 이 곡은 다음과 같은 주제를 파고든다.
- 도피(Escapism) – 내레이션하는 화자는 꿈이자 환각 같은, 현실과는 다른 유혹적인 공간으로 끌려 들어간다. 그곳은 거칠고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의 안식과 해방을 약속한다.
- 현실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충동 – 「Mesmerizer」 속 현실은 답답하고, 시끄럽고, 상처를 주는 것으로 그려진다. 곡 속 목소리는 그곳에서 벗어날 출구를 필사적으로 찾지만, 그 길의 끝이 어디로 이어지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 환상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감각 – 그 ‘매혹적인 것’(사람일 수도, 장소일 수도, 정신 상태일 수도 있는)은 단순한 도피처가 아니라, 자아를 지워 버릴 위험을 품고 있다. 곡 전체에 흐르는 긴장은 이 질문으로 요약된다. 이건 구원인가, 아니면 자기 파괴인가?
가사 곳곳에는 체념과 욕망이 뒤섞인 후렴들이 반복된다. 화자는 이 "Mesmerizer"가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계속해서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간다. 이 모호함이 이 곡의 핵심이다. 치유와 중독, 위로와 지배 사이에 선을 그어 주지 않은 채, 일부러 경계를 흐릿하게 둔다.
이는 한 가지 감정—슬픔, 기쁨, 분노—만을 비교적 단순하게 밀어붙이던 이전 세대 보컬로이드 곡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Mesmerizer」는 두 현실 사이에 끼인 상태를 그리며, 끝까지 그 긴장을 완전히 해소하지 않는다.
분위기 곡에서 미니 영화로: 보컬로이드 스토리텔링의 전환
「Mesmerizer」의 중요한 공헌 중 하나는 서사 중심의 가사 쓰기에 있다.
초기 혹은 ‘클래식’이라 불리는 많은 보컬로이드 히트곡들은 주로 분위기에 의존한다. 캐치한 멜로디, 강렬한 드롭, 감정이 실린 문장들로 ‘무드’를 만들어 내지만, 가사가 꼭 영화처럼 짜인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지는 않다. 「Mesmerizer」는 그와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
하나의 영화처럼 이어지는 시네마틱 가사
파편화된 이미지의 나열이 아니라, 「Mesmerizer」는 거의 한 편의 심리 스릴러 단편처럼 전개된다.
- 도입(Setup) – 현실에 대한 주인공의 불만과, 처음으로 ‘최면적인 존재’를 마주하는 순간.
- 하강(Descent) – 점점 깊이 빠져드는 최면 상태. 반복, 의식, 트랜스(trans)를 연상시키는 표현들이 가사에 메아리친다.
- 균열(Fracture) – 자신이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혹은 아예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자각의 순간.
- 모호한 결말(Ambiguous Ending) – 분명한 승리도, 완전한 붕괴도 아닌 채, 수용과 공포 사이 어딘가에 청자를 매단 채 끝을 맺는다.
곡은 시각, 수면, 반사, 순환 같은 단어와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사용해 이 내러티브의 호흡을 구축한다. 이 방식은 가사를 단순한 감정의 색채가 아니라, 마치 시나리오나 콘티처럼 다루는 이후 보컬로이드 작품들의 기반이 되었다.
보컬로이드 프로듀서들에게 생긴 새로운 기준
「Mesmerizer」 이후, 더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다음과 같은 방식을 택하기 시작했다.
- 곡을 완결된 서사 경험(도입, 빌드업, 반전, 결말)으로 설계한다.
- 기획 초기 단계부터 가사, 작곡, 비주얼의 테마를 함께 맞춰 간다.
- 각 트랙을 “PV가 붙은 노래”가 아니라, 하나의 숏필름 같은 완성된 패키지로 취급한다.
이 변화는 커뮤니티의 기준선을 끌어올렸다. 청자들은 단순한 감정적 공감뿐 아니라, 이야기의 일관성과 테마의 정합성까지 기대하게 되었다.
사운드 디자인: 디지털 미래 속 뉴웨이브의 그림자
음악적으로 「Mesmerizer」는 뉴웨이브와 현대 전자음악 스타일의 융합이다. 이 조합이 어둡고 공기감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
뉴웨이브(New Wave)의 DNA
뉴웨이브의 영향은 여러 요소에서 드러난다.
- 레트로한 감성의 신스 패드와 아르페지오 – 80년대 일렉트로닉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톤과 진행.
- 기계적으로 느껴지는 일정한 펄스 베이스라인 – 곡 전체를 밀고 나가는 맥동감이 최면적인 테마와 맞물린다.
- 살짝 비틀린 멜로디 훅 – 귀에 남을 만큼 인상적이면서도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는, 어딘가 불편함을 남기는 선율.
이 요소들은 곡에 시간성을 초월한, 약간은 향수를 자극하는 공기를 부여하면서도, 보컬로이드라는 디지털 컨텍스트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게 한다.
더 어둡고, 더 공기감 있는 보컬로이드 스타일
많은 인기 보컬로이드 곡들이 밝고 하이텐션의 EDM이나 팝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Mesmerizer」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어둠 쪽으로 기운다.
- 단조(Minor Key)와 불협화음 – 듣는 이를 불안하게 만드는 화성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 텍스처 레이어링 – 잔향과 에코를 중첩해, 밀폐된 방 안에서 울리는 목소리 같은 감각을 만든다.
- 절제된 다이내믹 – 구간마다 폭발하는 대신, 숨 막히기 직전까지 긴장을 조이고, 드롭을 절묘하게 늦춘다.
이 조합은 보컬로이드 씬 안에서 노아르 영화 같은 분위기의 시네마틱 서브스타일을 규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신스와 디지털 보컬로 번역된 필름 누아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Mesmerizer」의 성공은, 이런 더 우울하고 공기감 있는 방향성에 대한 수요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증명했다.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비주얼이 서사를 끌고 갈 때
곡이 설계도라면, 뮤직비디오는 「Mesmerizer」가 진짜로 숨을 쉬기 시작하는 자리다.
이 애니메이션 PV는 곡을 장식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거의 모든 컷, 카메라 무브, 시각적 모티프가 음악의 감정적 비트와 촘촘하게 맞물린, 연출력 강한 스토리 중심 작품이다.
제작자에 대하여: 영상은 보통 독립 애니메이터/디렉터에게 크레딧이 돌아가며, 원본 업로드 설명란에 이름이 표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Mesmerizer」 PV에서 이들이 보여 준 것은, 영화적인 구도, 상징적인 이미지, 정교한 리듬 편집이 결합된 스타일이며, 이후 많은 보컬로이드 PV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정확한 정보는 항상 공식 업로드 페이지의 크레딧을 참고하자.
감정과 움직임의 완벽한 싱크
PV에서 특히 눈에 띄는 기법들은 다음과 같다.
- 비트에 맞춘 컷 편집 – 장면 전환이 스네어 히트, 코드 체인지, 핵심 가사 구절에 정확히 맞춰 떨어지면서, 화면과 음악이 물리적으로 연결된 듯한 감각을 준다.
- 비주얼의 “스웰(Swell)” – 후렴이나 감정이 치솟는 구간에서 줌, 빠른 컷 편집, 색감 변화 등이 동시에 밀려오며 곡의 고조를 시각적으로 증폭한다.
- 리드미컬한 루프 애니메이션 – 반복되는 동작과 패턴이 가사의 ‘순환’, ‘트랜스’, ‘집착’ 테마를 시각적으로 되비춘다.
이런 싱크로는 영상을 곡의 심리 상태를 드러내는 가시적인 심장 박동으로 만든다.
최면과 정체성 상실의 시각화
PV는 최면적 도피라는 가사의 테마를 다음과 같은 이미지로 더 깊게 풀어낸다.
- 눈, 거울, 반사 – 지각과 자아를 상징하는 요소들이 왜곡되거나 조각난 형태로 등장한다.
- 미로 같은, 혹은 폐쇄된 공간 – 복도, 방, 추상적인 기하 구조물들이, 마치 자기 내면에 갇혀 버린 상태를 연상시킨다.
- 점진적인 캐릭터의 붕괴 – 곡이 진행될수록 중심 인물이 점점 덜 명확해지고, 더 스타일화되거나 ‘글리치(glitch)’ 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자아가 분해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반영한다.
영상은 스토리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보다는, 의도적으로 해석을 유도하는 여백을 남긴다. 이 점은 이후 ‘아트 지향’ 보컬로이드 PV들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전환점으로서의 의미: 아트 지향 보컬로이드의 기준을 끌어올리다
「Mesmerizer」는 단순한 인기곡을 넘어, 차트와 플랫폼에서의 반응을 통해 커뮤니티가 이 정도 야심을 가진 작업을 얼마나 갈망하고 있었는지 드러낸 작품이기도 하다.
이후 프로듀서·애니메이터에게 미친 영향
이 곡이 공개되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뒤, 다음과 같은 경향을 보이는 작품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게 됐다.
- 각 트랙을 하나의 장으로 삼는 서사형 앨범 및 연작 곡 시리즈
- 프로듀서와 전담 PV 애니메이터가 초기 기획 단계부터 함께 붙는 콜라보레이션 (곡 완성 후 뒤늦게 PV를 얹는 방식이 아니라)
- 「Mesmerizer」식 심리 묘사를 연상시키는 더 실험적이고 상징적인 비주얼 언어 – 초현실적인 이미지, 상징 서사, 비선형 편집 등
요약하자면, 「Mesmerizer」는 보컬로이드 곡은 더 이상 ‘오디오’만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굳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음악, 그림, 영상, 콘셉트가 겹겹이 쌓인 멀티 레이어의 미디어 경험이라는 인식이다.
커뮤니티 기준의 변화
이 곡의 성과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준다.
- 청자들은 단순히 중독성 있는 후렴뿐 아니라, 위험을 감수한 실험과 예술적 응집력 자체를 높이 평가한다.
- 비주얼 디렉션에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는 것이, 인디 크리에이터에게도 충분히 가치 있는 선택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 높은 완성도의 스토리 중심 곡이 커뮤니티의 새로운 기준이 되어, 다른 창작자들에게도 “자신의 한계를 한 번 더 넘어 보라”는 자극을 준다.
「Mesmerizer」는 그 이후로 야심 있는 크리에이터라면 무시하기 어려운 기준점이 되었다.
공모전, 담론, 그리고 ‘공정성’이라는 질문
조회수와 좋아요를 넘어, 「Mesmerizer」는 애니메이션·뮤직비디오 공모전 씬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아트 성향이 강한 보컬로이드 PV들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이를 상영·심사 대상으로 삼는 공모전과 페스티벌에서는 다음과 같은 고민이 생겨났다.
- 공정성 – 최소한의 컷으로 상징만을 던지는 미니멀한 영상과, 풀 애니메이션에 가까운 시네마틱 PV를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수 있을까? 「Mesmerizer」 같은 작품들은 심사 기준을 다시 짜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 독창성 – 어떤 스타일이 엄청난 영향력을 갖게 되면, 이후 그에 영향을 받은 작품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담고 있더라도 ‘아류작’으로 치부될 위험을 안게 된다.
- 인정과 크레딧 – 하나의 결과물에 프로듀서, 작사가, 일러스트레이터, 애니메이터가 함께 얽힌 콜라보 작품일 경우, 상과 공로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문제.
「Mesmerizer」는 이러한 논쟁 속에서 자주 언급되는 기준작(benchmark)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무엇이 가능한지 보여 주는 모범이면서, 동시에 이런 작품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의 불씨이기도 했다.
결론: ‘총체 예술’에 가까워진 새로운 보컬로이드의 시대
「Mesmerizer」는 그저 어둡고 최면적인 보컬로이드 곡이 아니다. 하나의 곡이 어떻게 전체 창작 생태계에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사례 연구에 가깝다.
이 작품은 다음을 하나로 엮어 냄으로써,
- 최면, 도피, 정체성 상실이라는 개념적으로 풍부한 테마,
- 심리 스릴러 단편을 보는 듯한 서사적·시네마틱 가사,
- 불편함과 긴장을 정면으로 끌어안은 뉴웨이브 계열의 공기감 있는 사운드,
- 이야기를 더 깊고 복잡하게 만드는 정밀하게 싱크된 상징적 애니메이션 PV를
보컬로이드를 한층 더 **‘토털 멀티미디어 아트’**에 가까운 영역으로 옮겨 놓았다.
그 이후 더 많은 프로듀서가 영화감독처럼 사고하고, 더 많은 애니메이터가 PV를 하나의 서사 캔버스로 다루게 되었으며, 관객은 복잡성, 일관성, 비주얼 퀄리티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다.
초기 보컬로이드 시대가 "합성 음성이 히트곡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단계였다면, 「Mesmerizer」 이후의 시대는 전혀 다른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다. “하나의 잘 짜인 프로젝트가, 소리뿐 아니라 이야기·이미지·아이디어로까지 사람을 최면에 빠뜨리며, 씬 자체를 안에서부터 바꾸어 놓을 수 있는가?”
「Mesmerizer」는 그 질문에 아주 강렬한 ‘그렇다’라는 대답을 던진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