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 Lag

노트북만으로 운영하는 인시던트 관측소: 손글씨 일일 로그로 느리게 타오르는 장애를 관찰하기

단순한 손글씨 노트 한 권이 어떻게 느리게 진행되는 장애를 드러내고, 운영자의 직관을 증폭시키며, 복잡한 시스템의 인시던트 대응 문화를 조용히 바꿔 나가는지에 대해 다룹니다.

노트북만으로 운영하는 인시던트 관측소: 손글씨 일일 로그로 느리게 타오르는 장애를 관찰하기

현대 시스템은 데이터에 흠뻑 젖어 있습니다. 대시보드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로그는 기가바이트 단위로 쏟아지며, 알림은 하루 종일 울립니다. 그런데 가장 영향력이 큰 장애 중 일부는 처음에는 전혀 알람을 울리지 않는 문제들입니다.

이런 장애는 서서히, 눈에 잘 띄지 않게 스며듭니다. 여기서는 약간의 지연 증가, 저기서는 아주 미묘한 오류율 상승, 모두가 “뭔지 잘 모르겠는” 반복되는 경고 메시지 같은 것들로 시작합니다. 며칠, 혹은 몇 주가 지난 뒤에야 이 작은 이상 징후들이 쌓여 마침내 모두를 깨워 버리는 큰 장애로 폭발합니다.

이 지점에서 예상 밖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바로 사람 손으로 매일 기록하는 아주 단순한 종이 노트, **“노트북-온리 인시던트 관측소(Notebook-Only Incident Observatory)”**입니다.

이 글에서는 이런 저기술(low-tech) 기반의 노트 기록 방식이 어떻게

  • 느리게 진행되는 장애를 터지기 전에 드러내고
  • 도구들이 놓치는 인간의 직관과 맥락을 포착하며
  • 트러블슈팅, 학습, 장기적인 안정성을 개선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하이테크 시대에 종이 노트가 여전히 중요한 이유

관측(Observability) 플랫폼과 AI 기반 모니터링이 넘쳐나는 시대에 손글씨 로그북이라니, 얼핏 보면 우스꽝스럽게 들립니다. 하지만 실제 종이 노트는 디지털 도구가 잘 제공하지 못하는 고유한 장점을 여럿 갖고 있습니다.

1. 사람 중심의, 저기술 시스템 건강 관점

노트북-온리 인시던트 관측소는 운영자가 매일 눈으로 보고, 느끼고, 수행한 일을 손으로 적어 내려가는 기록입니다.

  • 오늘 뭐가 좀 이상했는가?
  • 알람은 안 떴지만, 왠지 평소와 다르게 느껴진 것은 무엇인가?
  • 무엇을 조사했고, 무엇을 조정했으며, 무엇을 미뤄 두었는가?

이 노트는 대시보드나 자동화 파이프라인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에, 시스템의 건강 상태에 대한 **인간 기준의 실시간 연대기(ground-truth human timeline)**가 됩니다.

  • 로그/모니터링 인프라 자체가 장애가 나도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 로그 보존 기간, 스키마 변경 등과 무관하게 그대로 남습니다.
  • 시스템이 무엇을 측정했는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 시스템과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2. 손으로 적는 행위가 생각을 더 명료하게 만든다

무언가를 손글씨로 적으려면:

  • 속도를 늦추어야 하고
  • 단어를 더 신중하게 골라야 하며
  • 원인, 결과, 불확실성을 스스로 정리하게 됩니다.

이 인지적 마찰(cognitive friction)은 단점이 아니라 장점입니다. 손으로 쓰는 규율 덕분에 운영자는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에 답을 적게 됩니다.

  • “증상이 정확히 뭐지?”
  • “무슨 원인일 가능성이 있을까?”
  • “무엇을 해 봤고, 결과는 어땠지?”

이런 과정이 쌓이면, 운영자의 머릿속 모델이 점점 더 또렷해지고, 인시던트 대응과 사후 분석(Postmortem)에서 얻는 학습의 깊이도 함께 커집니다.


나만의 노트북-온리 인시던트 관측소 설계하기

종이 로그북을 효과적으로 쓰는 핵심은 단순한 구조 + 꾸준함입니다. 거창한 템플릿은 필요 없지만, 반복 가능한 최소한의 틀은 있어야 합니다.

기본 구조: 한 항목, 네 가지 요소

눈에 띄는 이벤트, 이상 징후, 조치가 있을 때마다 최소한 다음 네 가지는 적습니다.

  1. 시간(Time)
    언제 발생했는지. 가능하면 구체적인 타임스탬프를 적습니다.

  2. 증상(Symptoms)
    무엇을 관찰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씁니다.

    • “API p99 레이턴시가 약 10분간 ~250ms에서 ~450ms로 증가.”
    • “EU 사용자로부터 ‘로그인 느림’ 관련 고객 지원 티켓 다수 유입.”
  3. 추정 원인(Suspected Causes)
    확신이 없어도 좋으니, 무슨 일일 가능성이 있는지 적습니다.

    • “새 인덱스 배포 이후 DB 경합(DB contention) 가능성?”
    • “리전 네트워크 혼잡 추정. Grafana 상 CPU는 정상.”
  4. 실행한 조치(Actions Taken)
    그에 대응해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기록합니다.

    • “EU 트래픽에 대해 기능 플래그 X 롤백.”
    • “DB 쿼리 플랜 캡처, 심층 분석은 내일로 연기.”

이 단순한 네 가지 구조만으로도 흩어진 관찰들이 작은 인시던트 리포트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당장은 “불이 난 것 같지 않아” 보여도 말이죠.

일과 속에 녹이는 루틴: 영웅적 노력 말고 습관으로

이 관측소는 꾸준히 사용될 때만 힘을 발휘합니다.

현실적인 일일 루틴 예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 근무 시작 시 요약 (5–10분)

    • 날짜, 본인 이름, 이전 근무자 핸드오버 메모를 적습니다.
    • 지난 24시간 동안의 대시보드와 알람 히스토리를 훑으며, 자동으로 해결되었더라도 “조금 이상했던 점”을 간단히 적어 둡니다.
  • 근무 중

    • 위 네 가지 구조(시간, 증상, 추정 원인, 조치)를 사용해 이상 징후, 경고, 운영 개입, “이거 좀 이상한데?” 싶은 순간을 계속 기록합니다.
  • 근무 종료 전 회고 (5–10분)

    • 그날의 주요 이벤트, 아직 풀리지 않은 질문, 다음 근무자에게 넘길 사항을 정리해 적습니다.
    • “느리게 시작된 패턴처럼 보이는 것”에는 표시를 해 둡니다.

모든 것을 다 적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날 무엇이 중요했는지에 대한 서사를 매일 조금씩 쌓아가려는 것입니다.


느리게 타오르는 장애를 커지기 전에 포착하기

대부분의 조직은 갑작스럽고 눈에 확 띄는 장애에는 꽤 잘 대응합니다. 서비스 다운, 오류율 급상승, 알람 폭주 같은 것들 말입니다. 대시보드가 이런 상황은 놓치기 어렵게 만들어 줍니다.

느리게 타오르는 장애(slow-burn outage)는 다릅니다. 이런 장애는 대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 서서히 진행되는 성능 저하
  • 간헐적이거나 저빈도 오류
  • 점점 늘어가는 운영자의 임시방편(워크어라운드)
  • 모니터링 상에서는 애매하거나 시끄러운 신호들

노트가 숨은 패턴을 드러내는 방식

노트북의 기록을 며칠, 몇 주 단위로 펼쳐 보면, 자동화된 도구가 명확하게 떠올려 주지 못했던 미묘한 패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 반복되는 경고
    1일 차: “노드 A에 ‘디스크 거의 가득 참’ 경고. 로그 로테이션 후 해소.”
    3일 차: “같은 경고 노드 A, C에서 재발.”
    7일 차: “여러 노드 디스크 80% 근접. 정리 작업 계획 필요.”

  • 사소해 보이는 레이턴시 스파이크
    며칠치 기록을 보면 이런 패턴이 보일 수 있습니다.

    • “3일 연속 02:00 UTC 근처에서 p95 레이턴시 소폭 증가.”
    • “그 시간대에 검색 느림 관련 고객 문의 집중.”
  • 점점 커지는 운영 피로도
    “워커 X 다시 수동 재시작” 같은 메모가 반복해서 등장한다면, 이는 본격적인 장애로 번지기 전에 해결해야 하는 느리게 진행 중인 안정성 문제라는 신호입니다.

노트는 시간 순으로 빽빽하게 이어져 있고, 내용이 비교적 압축되어 있어서, 1주·1개월 단위로 훑어 보기가 쉽습니다. 그러다 보면 아래와 같은 깨달음이 나옵니다.

  • “이 증상, 이번이 처음이 아니네.”
  • “빈도가 점점 늘고 있네.”
  • “배포/트래픽 피크/특정 리전과 묘하게 동조되어 있네.”

이런 통찰이야말로 고객이 체감하는 대형 장애가 되기 전에 선제 대응을 가능하게 해 줍니다.


자동 모니터링을 대체가 아니라 보완하기

노트북-온리 관측소는 기술을 거부하는 선언이 아닙니다. 대시보드, 로그, 알림 시스템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도구입니다.

자동화가 잘하는 일

자동화된 모니터링/관측 도구는 다음과 같은 영역에서 탁월합니다.

  • 대량의 고해상도 메트릭·트레이스 수집
  • 임계치를 넘는 이상 징후의 빠른 탐지
  • 원시 데이터의 장기 보존과 쿼리

이 기능들은 여전히 꼭 필요합니다.

노트가 도구들이 놓치기 쉬운 것들

손글씨 로그북이 빛을 발하는 지점은 **맥락(context)과 직관(intuition)**입니다.

  • 인간의 의심과 연관 짓기
    “이 패턴, 작년에 있었던 메모리 릭 때랑 좀 비슷한데…”

  • 환경적 맥락
    “이 스파이크는 대형 마케팅 캠페인 런칭과 시점이 겹침.”

  • 부분적이고 불확실한 정보
    “아직 의미 있는지 확신은 없지만, 메모해 둔다.”

  • 운영 현실
    “온콜이 너무 바빠서 저우선순위 알람은 조사 못 함. 내일로 연기.”

이런 내용은 구조화된 로그나 메트릭에는 잘 담기지 않지만, 인시던트가 왜 그런 식으로 전개됐는지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됩니다.


노트에서 더 나은 포스트모템과 안정성으로

노트북 관측소의 진짜 가치는 **사후 인시던트 리뷰(포스트모템)**에서 폭발적으로 증폭됩니다.

실제 타임라인을 재구성하기

포스트모템을 할 때 노트를 활용하면 다음을 할 수 있습니다.

  • 인간 타임라인 재구성: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인지했고, 그 당시 왜 중요해 보이지 않았는지까지 포함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 인시던트 이전에 존재했던 **미약한 신호(weak signals)**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 메트릭상으로 보이는 모습과, 현장에서 “체감된” 인시던트가 어떻게 달랐는지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드러나곤 합니다.

  • 알림 전략의 빈틈(시끄러운 메트릭, 누락된 신호 등)
  • 문서화나 오너십 문제 (“이 잡이 누구 소유인지 아무도 몰랐다.”)
  • 교육 필요성 (“이 경고가 심각한 의미인지 몰랐다.”)

관찰을 조직적 개선으로 연결하기

각 항목이 (시간, 증상, 추정 원인, 조치)로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정리가 쉬워집니다.

  • 반복되는 패턴 추출: “이 컴포넌트를 우리가 계속 수동 재시작하고 있다.”
  • 구체적인 개선안 제안: 더 나은 런북, 신규 알람 추가, 책임자 명확화 등.
  • 개선 후 효과 추적: 비슷한 유형의 노트 항목이 실제로 줄어드는지 살펴보기.

이렇게 해서 노트는 즉흥적인 불 끄기축적되는 조직 학습으로 바꿔 줍니다.


이 관측소를 조직에 안착시키는 실용 팁

노트북-온리 인시던트 관측소를 시도해 보고 싶다면, 가볍고 지속 가능하게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팀/서비스별 공용 노트를 쓰기
    팀이나 서비스 단위로 한 권씩 두고, 모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둡니다. 온콜 로테이션마다 한 권씩 쓰는 방식도 좋습니다.

  • 첫 페이지에 간단한 범례(legend) 만들기
    반복되는 이벤트를 간단히 표시할 약어를 정합니다. (예: D=배포(Deploy), A=알람(Alert), T=티켓(Ticket))

  • 큰 사고가 없을 때도 정기적으로 리뷰하기
    주 1회 정도 짧게 훑어보며 느리게 진행 중인 트렌드를 찾아봅니다.

  • 심리적 안전(psychological safety) 보장
    이 노트는 잘잘못을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학습을 위한 도구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확신 없는 생각, 부분적인 이해도 편하게 적을 수 있어야 합니다.

  • 선별적으로 디지털화하기
    큰 인시던트나 반복되는 패턴이 보이면, 그 핵심 인사이트만 디지털 인시던트 트래커나 지식 베이스에 요약해 옮깁니다.


결론: 조용히, 그러나 길게 지켜보는 관점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모든 개선이 새로운 툴, 머신러닝, 거대한 대시보드를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공책 한 권, 펜 한 자루, 그리고 주의 깊게 바라보는 습관이면 충분합니다.

노트북-온리 인시던트 관측소는 다음과 같은 가치를 제공합니다.

  • 시스템의 건강 상태를 사람 중심, 저기술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고
  • 느리게 타오르는 장애를 커지기 전에 가시화하며
  • 자동화가 포착하지 못하는 맥락, 직관, 불확실성을 담아내고
  • 포스트모템과 장기적인 신뢰성 개선을 한층 더 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실시간에 집착하는 세상에서, 겸손한 손글씨 로그북은 우리에게 ‘느린 시간(slow time)’ 속에서 시스템을 바라보는 시각을 선물합니다. 하루하루, 한 줄 한 줄을 쌓아가며, 다음번 “갑작스러운” 장애가 사실은 전혀 갑작스럽지 않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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