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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탭 스크래치패드: 사라지기 전에 코딩 아이디어를 가볍게 붙잡고 다듬는 방법

항상 열어 두는 단 하나의 스크래치패드 탭이, 추가 도구나 번거로움 없이 코딩 플로우와 개인 지식 시스템을 이어 주는 ‘잃어버린 고리’가 되는 방법.

싱글 탭 스크래치패드: 사라지기 전에 코딩 아이디어를 가볍게 붙잡고 다듬는 방법

개발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 봤을 거다. 깊이 코드를 파고들던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 “이 부분 리팩터링해야겠다.”
  • “여기 테스트 하나 더 있어야겠다.”
  • “이 라이브러리 한번 써 봐야겠다.”
  • “이건 팀원한테 한번 물어봐야겠다.”

그리고 잠깐만 한눈을 판 사이, 그 생각은 sp처럼 사라진다.

분명 어딘가에 적어 두려고 했고, 티켓을 만들거나 지식 베이스에 남겨 두려고 했는데, 막상 하려니 귀찮다. 앱을 바꾸고, 프로젝트를 고르고, 태그를 붙이고, 필드를 채우는 그 작은 마찰 때문에, 순간이 그냥 지나가 버린다.

여기서 등장하는 게 싱글 탭 스크래치패드(single-tab scratchpad) 다. 새로운 앱도 아니고, 복잡한 방법론을 외울 필요도 없다. 그냥 이거 하나면 된다.

생각이 떠오르는 즉시 아무 말이나 써 넣을 수 있는, 항상 열려 있는 아주 단순한 한 곳.

잘만 쓰면, 그 한 탭이 조용히 당신의 개인 지식 흐름을 지탱하는 척추 역할을 하게 된다.


왜 싱글 탭 스크래치패드가 그렇게 잘 먹히는가

대부분의 “아이디어 캡처” 조언이 개발자에게 잘 안 먹히는 가장 큰 이유는, 여러분이 늘 섬세한 멘탈 스택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코딩 중일 때, 여러분의 작업 메모리는 대략 이런 것들을 동시에 들고 있다.

  • 지금 붙잡고 있는 버그나 기능
  • 머릿속에 쌓아 둔 콜 스택(call stack)
  • 모델링 중인 데이터 구조
  •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 엣지 케이스들
  • 계속 염두에 두고 있는 퍼포먼스/보안 제약 조건

이때 컨텍스트 스위치를 요구하는 건 뭐든 간에 생각보다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 무거운 노트 앱을 열고,
  • 어느 폴더에 넣을지 고민하고,
  • 티켓 시스템의 폼을 채우는 일련의 과정들 말이다.

싱글 탭 스크래치패드는 이런 점에서 이긴다.

  • 마찰을 거의 0에 가깝게 줄인다. 한 번 클릭(또는 단축키), 바로 타이핑, 끝.
  • “이게 어디에 속하는지” 결정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냥 적어 두기만 하면 된다.
  • 작업 공간 안에 항상 떠 있다. 머릿속 생각이 넘칠 때 받아 주는 “오버플로 버퍼” 같은 존재다.

컴퓨터 안에 있는 상시 대기하는 화이트보드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까워서 못 쓰는 게 아니라, 막 써도 되는, 늘 열려 있는 빈 칠판.


최대한 가볍고 심심하게 유지할 것 (일부러 그렇게)

스크래치패드는 “생산성 시스템”이라기보다 그냥 빈 인덱스 카드에 더 가까워야 한다. 뭔가 거창하게 느껴지는 순간, 당신은 그걸 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좋은 스크래치패드 후보들:

  • 브라우저에 고정(pinned)해 둔, 아주 단순한 노트 웹앱 하나
  • 최소 기능만 있는 데스크톱 메모 도구 (예: 메모장, TextEdit, 혹은 Obsidian의 단일 노트)
  • 리포지토리나 홈 디렉터리에 있는 notes.md 또는 scratchpad.txt 파일 하나

무엇을 쓰든, 다음 기준에 맞추는 게 중요하다.

  • 바로 타이핑 가능할 것: 로딩 화면, 팝업, 템플릿 불러오기 같은 것들 없음.
  • 최소한의 UI: 크롬(툴바나 버튼들)과 구조는 최대한 단순하게.
  • 빠른 시작: 코딩을 시작하기 전에 열어 두고, 그 상태를 쭉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머릿속 모델은 이 정도면 좋다. “도구를 쓰는 게 아니라, 그냥 빈 화면에 글자를 치고 있다.”

플러그인을 설치하고, 템플릿을 설계하고, 어떻게 구조화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면 이미 너무 멀리 간 거다. 그런 건 진짜 지식 관리 시스템에서 할 일이다.


백엔드에 종속되지 않게, 하지만 확장 가능하게

오늘은 로컬 텍스트 파일을 쓰고 있을 수도 있다. 내일은 Obsidian, Logseq, Notion, Confluence, Linear, 혹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다른 도구에 올인할지도 모른다.

스크래치패드는 그 어떤 것에도 발이 묶이면 안 된다.

다음과 같이 설계해 두자.

  • 내용이 이식 가능할 것. 플레인 텍스트나 마크다운이 가장 이상적이다.
  • 다른 시스템으로 쉽게 복사/싱크 할 수 있을 것.
  • 특정 플랫폼에 ‘인생’을 맡기지 않을 것. 중요한 건 앱이 아니라, “항상 열어 둔 스크래치패드”라는 습관이다.

조금만 더 욕심을 부리고 싶다면, 하지만 마찰은 늘리지 말자.

  • 스크래치패드를 싱크되는 폴더(Git 리포지토리, 클라우드 드라이브 등)에 있는 단일 마크다운 파일로 유지한다.
  • 나중의 나 자신이 읽고 옮기기 쉽게, 가벼운 구조(타임스탬프, 헤딩 등)만 더한다.
  • 필요하다면, 나중에 엔트리를 잘라 내고 태그 달고 내보낼 수 있는 간단한 스크립트나 도구를 쓴다.

이렇게 하면 캡처 화면은 극도로 단순하게 유지하면서도, 아래 같은 작업을 쉽게 만들 수 있다.

  • 스크래치패드의 내용을 개인 지식 관리(PKM) 시스템으로 ‘승격’
  • 노트를 바로 티켓/이슈로 변환
  • 재사용 가능한 조각은 팀 문서나 위키로 옮기기

일부러 캡처와 정리를 분리하라

개발자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적으면서 동시에 정리까지 하려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 뇌는 생성 모드에 들어 있다. 그런데

“이건 어느 프로젝트에 넣어야 하지?”

“태그는 뭐로 해야 하지?”

와 같은 큐레이션 모드를 강제로 켜면, 플로우가 깨진다.

대신, 이 두 단계를 의도적으로 분리하자.

  1. 캡처(코딩 중)

    • 엉성하고 반쯤만 생각난 내용이라도 바로 스크래치패드에 쓴다.
    • 태그, 폴더, 문장 다듬기는 아예 신경 쓰지 않는다.
    • 아래처럼 빠른 단서 정도만 써도 충분하다.
      • TODO: @alice 한테 db migration 전략 물어보기
      • IDEA: parsing 전에 config normalize 하는 helper 함수 만들기
      • BUG? HTTP client 가 429 에서 retry 안 하는 듯
  2. 정리(나중에, 한꺼번에)

    • 하루에 한두 번, 혹은 코딩 블록이 끝날 때 스크래치패드를 쭉 훑어본다.
    • 각 항목을 제자리에 ‘승격’시킨다.
      • 작업 → 이슈 트래커
      • 아이디어 → 아이디어 리스트 / 로드맵
      • 배운 점 → 개인 지식 베이스나 팀 위키
      • 질문 → 팀 채팅 / 1:1 문서

이렇게 하면, 캡처는 끝까지 마찰 없이 유지되고, 정리는 따로 떼어 내 의도적으로 하는 작업이 되어, 중간중간 플로우를 방해하지 않는다.


더 큰 지식 관리 흐름 안에 녹여 넣기

스크래치패드는 최종 지식 저장소가 아니다. 입구다.

전체 흐름을 아주 단순하게 그려 보면 이런 느낌이다.

  1. 코딩 중:

    • 중요하든 사소하든, 뭔가 흥미롭다 싶으면 전부 스크래치패드에 쏟아 넣는다.
  2. 일일/주간 리뷰:

    • 장기적으로 남겨 둘 만한 항목이 있는지 훑어본다.
    • 그걸 PKM이나 팀 시스템으로 옮긴다.
  3. PKM / 위키 / 트래커에서:

    • 주제, 프로젝트, 도메인 등으로 정리한다.
    • 태그, 링크, 구조를 추가한다.
    • 검색과 백링크를 활용해 관련 지식을 연결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크래치패드는 메인 지식 시스템으로 계속 신선한 피를 공급하는 공급망이 된다. 그 과정에서, 코딩 모드에서 갑자기 사서 모드로 전환해야 하는 순간이 훨씬 줄어든다.


‘즉시 canvassing’ 도구로 활용하기

스크래치패드는 “무엇을 코딩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만 적는 공간이 아니다. “누구에게 뭘 물어볼지, 무엇을 더 찾아봐야 할지”를 정리하는 데도 아주 좋다.

플로우 상태로 코딩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자주 떠오른다.

  • 비슷한 문제를 이미 해결해 본 사람들
  • 읽어 봐야 할 문서들
  • 설계 리뷰를 부탁할 전문가들
  • 나중에 조사해 볼 라이브러리나 RFC들

이때 바로 채팅이나 이메일로 넘어가지 말고, 그냥 이렇게 적어 두면 된다.

  • ASK: @john 한테 auth throttling 어떻게 했는지 물어보기
  • READ: Postgres advisory locks 로 job dedup 하는 법 (링크가 있으면 같이)
  • REVIEW: 배포 전에 security 팀이랑 디자인 리뷰 잡기

그러면 스크래치패드는 자연스럽게 이런 것들을 모아 두는 canvassing 보드가 된다.

  • 누구에게 물어볼지
  • 무엇을 더 조사할지
  • 다음에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지

그리고 리뷰 시간에 이걸 바탕으로:

  • 메시지, 캘린더 초대, 티켓 등으로 변환하고
  • 팀원들에게 질문을 한 번에 묶어서 보내, 계속 끊어 놓지 않고
  • 다음 집중 작업 블록을 위한 작은 “리서치 큐”를 만들어 둘 수 있다.

스크래치패드에서 지식을 ‘수확’하기

그냥 무작정 쌓기만 해도 어느 정도는 쓸모가 있다. 하지만 진짜 가치는, 패턴을 수확할 때 드러난다.

주기적으로 정리하면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들을 찾아보자.

  • 자꾸만 다시 맞닥뜨리는 함정들
  • 자주 복붙하게 되는 코드 스니펫들
  • 특정 유형의 문제를 디버깅할 때 매번 비슷하게 따라가는 절차
  • 피를 보면서 겨우 얻은 나만의 규칙이나 감각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이렇게 추출할 수 있다.

  • 재사용 가능한 코드 조각들 → 개인/팀 코드 스니펫 라이브러리
  • 피를 보며 배운 교훈들 → 개인 위키나 프로젝트 문서의 “Gotchas” 섹션
  • 반복되는 패턴과 체크리스트 → 디버깅, 배포 등 각종 작업의 표준 작업 절차(SOP)

예를 들어, 이런 문서들이 생길 수 있다.

  • “느린 쿼리 디버깅” 체크리스트
  • “백엔드 머지 전 점검 사항” 체크리스트
  • “프런트엔드 퍼포먼스 튜닝” 플레이북 (효과가 검증된 단계들 정리)

이런 걸 한 번 수확해 두면, 똑같은 불을 두 번 세게 맞을 확률이 조금씩 줄어든다.


오늘 바로 시작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

새로운 도구는 필요 없다. 솔직히, 다음 5분 안에 시작할 수 있다.

  1. 스크래치패드 만들기

    • 에디터에서 scratchpad.md 또는 notes.txt 파일을 하나 연다.
    • 아니면 가장 단순한 메모 앱을 열고 Scratchpad라는 노트를 하나 만든다.
  2. 핀(고정)하기

    • 에디터의 별도 창/패널이나 브라우저 탭에 항상 열어 둔다.
    • 닫지 않는다. 이제 개발 환경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3. 가차 없이 쓰기

    • 조금이라도 쓸모 있을 것 같은 생각, 질문, 아이디어는 전부 거기에 적는다.
  4. 정기적으로 리뷰하기

    • 하루를 마칠 때 한 번 쭉 훑어본다.
    • 남길 건 승격시키고, 버릴 건 지우고, 애매한 건 적당한 곳에 옮겨 둔다.
  5. 시간이 지나며 다듬기

    • 필요하면 타임스탬프나 구분선 같은 소소한 편의 기능을 더한다.
    • 대신, 복잡한 시스템으로 만들려는 유혹은 최대한 참는다.

결론: 작지만 복리로 쌓이는 습관

싱글 탭 스크래치패드는 겉으로 보면 너무 단순하다. 화려하지도 않고, 자동화도 안 돼 있고, 생산성 블로그에서 자랑하기도 애매하다.

하지만 이 도구가 기가 막히게 잘하는 일이 하나 있다. 딱 그 정도의 마찰을 없애 줘서,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최고의 코딩 생각들이 실제로 어딘가에 남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 스크래치패드를 이렇게 바라보면 좋다.

  • 항상 열려 있고, 항상 준비된 저마찰 캡처 표면
  • 날것의 브레인 덤프와 구조화된 지식 사이를 잇는 스테이징 존
  • 누구에게 물어볼지, 무엇을 더 파볼지, 다음에 뭘 시도해 볼지 정리하는 canvassing 도구
  • 패턴, 스니펫, 배운 점을 주기적으로 캐내는 지식 광산

시작은 단순하다. 파일 하나, 탭 하나, 습관 하나.

“애매하면, 일단 스크래치패드에 적는다.”

이 한 가지만 지켜도, 그동안 공중으로 사라지던 “잃어버린 천재성”이 조용히, 꽤 많이, 사라지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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