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키 스펙 스케치: 어떤 기능에도 마감 약속하기 전에 한 페이지부터 그려라
단 한 장짜리 ‘스티키 스펙’으로 흐릿한 아이디어를 명확하고 공유된 범위로 바꾸어, 견적을 현실적으로 만들고, 엣지 케이스를 드러내며, 기능 마감일을 약속하기 전에 팀을 정렬하는 방법.
스티키 스펙 스케치: 어떤 기능에도 마감 약속하기 전에 한 페이지부터 그려라
기능을 제때 내는 문제는 대부분 추정(estimate)의 문제라기보다, 명확성(clarity)의 문제다.
팀은 종종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마감일을 약속한다.
- 리더십에서 내려온 모호한 요청
- 급하게 오간 슬랙(Slack) 대화
- “대충 폼 하나랑 API 콜 정도예요” 같은 러프한 설명
그러다 일의 중간쯤 되면, 그 “대충” 이 폭발한다. 숨겨진 엣지 케이스, 빠진 결정들, 예상 못 한 연동 이슈, 컴플라이언스/거버넌스 이슈가 튀어나온다. 추정치는 터지고, 신뢰는 떨어지고, 모두가 뒤통수 맞은 기분이 된다.
이걸 대부분 피할 수 있는, 단순하지만 마찰이 거의 없는 방법이 있다. 바로 어떤 기능 마감일도 약속하기 전에, 한 장짜리 ‘스티키 스펙’ 스케치를 먼저 그리는 것이다.
이건 거대한 문서나 완벽함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지저분한 아이디어를 명확하고 공유된 결정으로 바꿔 주는, 작지만 강력한 산출물 하나를 만드는 일이다.
스티키 스펙 스케치란 무엇인가?
스티키 스펙(sticky spec) 은 한 페이지짜리 스코프다. 시각적 요소와 텍스트가 섞인, 간결한 스케치로서 실제로 무엇을 만들 건지 담아낸다. 딱 이 정도면 충분하다:
- 크로스펑셔널 이해관계자들을 정렬시키고
- 엣지 케이스와 가정을 드러내며
- 추정을 구체적인 것에 기반하게 만든다
이걸 이렇게 생각해도 좋다:
인쇄해서 벽에 붙여도 말이 되고, 30분짜리 스코프 논의를 이끌 수 있는 단 한 장의 페이지
“스티키(sticky)”라는 이름은 이런 이유에서 붙었다.
- 쉽게 붙여두고 계속 참조할 수 있고
- 10페이지짜리 스펙보다 훨씬 더 머릿속에 잘 남고
- 실제 구현이 시작된 뒤에도 가볍게 계속 살아남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이건 풀 사이즈의 제품 요구사항 문서(PRD)가 아니다. 마감일을 약속하기 전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최소한의 스펙이다.
한 장이 대화를 바꾸는 이유
대부분의 계획 회의는 주관적인, 뜬구름 잡는 말들로 시작한다.
- “이건 작은 변경이에요.”
- “이 정도면 한 스프린트 안에 끝낼 수 있죠.”
- “UI는 단순해요.”
눈앞에 구체적인 무언가가 없으면, 이런 말들은 전부 의견(opinion) 에 불과하다. 스티키 스펙은 이런 의견을 팀이 함께 맞춰볼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바꿔 준다.
주관적에서 객관적으로
한 페이지짜리 스코프를 스케치하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 이 화면에 정확히 뭐가 보이는가?
- 사용자는 어떤 행동과 플로우를 거치는가?
- v1에서 포함되는 건 무엇이고, 무엇은 명시적으로 제외되는가?
- 어떤 입력/출력/연동(integration)이 필요한가?
이제 “작아 보인다”는 느낌 싸움 대신, 이렇게 구체적인 얘기를 하게 된다.
“여기 에러 플로우가 3개나 있고, 새로 붙여야 할 시스템이 2개네요.”
주관적:
“아마 일주일이면 될 기능이에요.”
객관적:
“유저 플로우가 4개, 새 DB 테이블 하나, 승인 절차 하나가 필요하네요. 테스트까지 하면 2–3주에 가깝겠어요.”
스티키 스펙이 완벽한 추정을 보장해 주진 않는다. 하지만 예상 못 한 변수의 개수를 크게 줄여 준다.
왜 한 페이지가 모든 직군에 통하는가
스티키 스펙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누구나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엔지니어만, 디자이너만 이해하는 문서가 아니다.
잘 만든 한 페이지짜리 스코프는 다음 사람들이 몇 분 안에 이해할 수 있다.
- 엔지니어링: 기술 난이도, 엣지 케이스, 의존성 평가
- 프로덕트: 유저 가치와 트레이드오프 확인
- 디자인: UX 플로우와 상호작용 이슈 도출
- 파이낸스 / 운영: 비용, 수동 작업, 운영 영향 파악
- 리더십: 어떤 범위를 약속하는지, 무엇이 포함/제외되는지 빠르게 파악
한 페이지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해관계자가 실제 의사결정 미팅 전에 읽어 줄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리고 이 작은 공간 안에 아이디어를 압축해 넣으면서, 이미 시끄러운 노이즈를 걷어내고 핵심만 남기는 작업을 마친 셈이 된다.
이런 짧음은 일종의 훈련 효과를 강요한다.
- 한 페이지에 안 들어간다면, 스코프가 너무 크거나 아직 너무 흐릿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 단순하고 시각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 아직 추정할 만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목표는 완벽함이 아니라, 모멘텀이다
스펙과 관련해 흔히 빠지는 함정이 있다. 완전함을 향해 과하게 최적화하는 것. 문서가 “아직 덜 정리됐다”는 이유로 실제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미루는 상황이다.
스티키 스펙은 이런 태도를 정면으로 거부한다.
목표는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일을 시작하고, 하면서 발전시킬 수 있을 만큼만 충분히 구체적일 것.”
우리가 하려는 건, 다음이 아니다.
- 모든 질문에 즉시 답하기
- 모든 엣지 케이스를 처음부터 전부 문서화하기
- 스코프를 돌이킬 수 없게 박제하기
우리가 진짜로 하려는 건 이거다.
-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큰 리스크가 되는 것들(데이터 모델 변경, 주요 연동, 핵심 UX 플로우)을 먼저 정하기
- 눈에 빤히 보이는 엣지 케이스를 초기에 드러내기
- 모두가 같은 그림을 머릿속에 갖게 해서, 이후 새 질문이 나왔을 때 더 빨리 합의하게 만들기
스티키 스펙을 살아 있는 스케치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일을 하면서 한두 번 수정될 수 있다. 하지만 초기의 한 페이지가 모두가 공유하는 출발점을 만들어 준다.
한 페이지 스케치가 추정을 어떻게 더 좋게 만드는가
추정이 실패하는 순간은 팀이 놀랐을 때다. 놀람은 보통 여기서 나온다.
- 숨겨진 복잡성
- 보이지 않았던 의존성
- 익숙하지 않은 도메인
스티키 스펙은 이런 놀라움을 마감일을 약속하기 전에 억지로 끌어올린다.
낯선 도메인에서 특히 강력하다
팀이 잘 모르는 도메인—컴플라이언스, 과금/빌링, 물류, 헬스케어 등—에서 일할 때 스티키 스펙은 특히 빛난다.
- 플로우를 그려보면, 도메인 전문가가 “그건 규정상 안 돼요”, “여기 승인 단계가 하나 더 필요합니다”라고 말해 줄 수 있다.
- 데이터를 정리해 보면, 파이낸스나 운영이 “리포팅/정산/감사(Audit) 요건이 빠졌어요”라고 짚어줄 수 있다.
- 연동을 그려보면, 엔지니어가 “여기 보안/지연 시간/가용성 제약이 있어요”라고 경고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추정치는 바뀐다. 하지만 약속하기 전에 드러나면 모두의 정신 건강이 지켜진다.
현실에 앵커링(anchoring)된 추정
한 줄짜리 Jira 티켓을 보고 추정하는 대신, 이제는 이런 것들을 바탕으로 추정한다.
- 구체적인 화면/플로우
- “스코프 안/밖”이 명확히 나뉜 항목
- 이름이 붙은 시스템과 연동
이렇게 한다고 추정이 쉬워지진 않지만, 솔직해진다.
스티키 스펙에는 무엇이 들어가야 할까? (간단 템플릿)
특별한 툴은 필요 없다. 화이트보드, 태블릿, 심지어 종이와 펜이면 충분하다. 가장 중요한 건 제약이다. 무조건 한 페이지.
실무에서 쓸 만한 구조는 대략 이렇다.
-
타이틀 & 문제 정의 (1–2문장)
누구의 어떤 문제를, 왜 지금 해결하려는가? -
주요 유저 플로우 (간단한 다이어그램 또는 박스+화살표)
- 시작 상태 → 핵심 단계 → 종료 상태
- 주요 분기(예: 성공 / 실패 / 대체 경로)
-
핵심 결정 사항 & 스코프 경계
- 이번 이터레이션에서 스코프 안인 것
- 명시적으로 스코프 밖이라서 나중으로 미루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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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 연동 (짧은 목록 또는 미니 다이어그램)
- 새로 생기는 엔티티나 필드
- 연동해야 하는 외부 시스템
- 중요한 제약사항 (예: “감사 가능해야 함”, “초당 X건 처리 필요” 등)
-
리스크, 엣지 케이스, 오픈 질문 (불릿 목록)
- “결제가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가?”
- “권한 X가 없는 유저는?”
- “기존 레거시 데이터는 어떻게 처리하는가?”
실제 페이지는 보통 이런 것들이 섞여 있다.
- 아주 단순한 와이어프레임
- 박스와 화살표
- 짧은 라벨
- 여백에 붙어 있는 몇 개의 불릿 목록
이 한 페이지에 다 안 들어가면, 설명하려는 게 너무 많다는 뜻이다. 그땐 과감히 둘 이상의 스티키 스펙으로 쪼개라.
숨은 보너스: 구현 가이드로도 쓸 수 있다
스티키 스펙은 계획 회의에서만 쓰고 버리는 문서가 아니다. 개발이 시작되면 가벼운 구현 가이드로 다시 살아난다.
- 개발자는 스케치를 보며 상태와 플로우를 계속 떠올릴 수 있다.
- QA / 테스터는 이걸 기반으로 테스트 케이스와 시나리오를 뽑아낼 수 있다.
- 디자이너는 거친 스케치를 실제 UI 목업으로 다듬을 수 있다.
- 프로덕트는 이 페이지를 기준으로 팀이 합의한 스코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잡아 줄 수 있다.
모두가 같은 페이지를 본 상태라, 개발 도중에 “잠깐, 우리 X까지 하는 거 아니었어요?” 같은 오해가 줄어든다.
어떤 팀은 아예 스펙을 책상 옆에 붙여두거나, 코딩하면서 브라우저 탭으로 계속 띄워 둔다. 이건 티켓이나 상세 디자인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티켓만으로는 부족한 맥락(context) 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팀에 스티키 스펙을 도입하는 방법
큰 프로세스 개편은 필요 없다. 작게 시작하면 된다.
-
다음에 들어온, 사소하지는 않은 기능 요청을 하나 고른다.
추정하거나 약속하기 전에 이렇게 말해 보자. “일단 한 페이지짜리 스케치를 같이 그려보죠.” -
크로스펑셔널 사람들을 같이 부른다.
최소한 엔지니어 한 명, 프로덕트 한 명, 그리고 해당 도메인 전문가를 포함한다. -
30–45분으로 타임박스한다.
위의 간단한 템플릿을 쓴다. 목표는 “완벽”이 아니라 “충분히 괜찮음”이다. -
페이지를 다 만들고 나서야 추정을 한다.
스티키 스펙을 공유된 레퍼런스로 삼아 노력과 리스크를 논의한다. -
구현을 시작한 뒤에도 이 페이지를 다시 본다.
필요하면 업데이트하되, 계속 짧게 유지한다. 이게 5페이지짜리 문서가 되기 시작했다면, 그 순간 이미 마법이 사라진 것이다.
두세 번 이런 사이클을 돌리고 나면, 아마 이런 변화를 느끼게 될 것이다.
- 구현 도중에 터지는 예상 밖 이슈가 줄어든다.
- 추정이 더 현실적으로 맞아떨어진다.
- 계획 미팅에서 정렬이 더 빨라지고 깔끔해진다.
결론: 약속하기 전에 먼저 그려라
성급한 약속은 나쁜 마감일을 만든다. 나쁜 마감일은 혼선과 번아웃, 그리고 불신을 만든다.
스티키 스펙 스케치 는 적은 노력으로 큰 효과를 내는 습관이다.
- 모호한 아이디어를 명확하고 공유된 스코프로 바꿔 주고
- 주관적인 의견을 객관적인 기준으로 바꾸며
- 크로스펑셔널 이해관계자들이 빠르게 정렬하도록 돕고
- 시작과 함께 진화시킬 수 있을 만큼의 “딱 필요한 만큼만” 디테일을 담고
- 추정을 더 현실적으로 만들고, 엣지 케이스를 초기에 드러내며
- 일이 시작된 뒤에도 계속 유용한 레퍼런스로 남는다.
다음에 기능 마감일을 약속해야 할 상황이 오면, 캘린더부터 보지 말고 잠깐 멈춰라. 빈 페이지를 집어 들고, 스티키 스펙을 스케치하라.
먼저 그려라. 그다음에 얼마나 걸릴지 결정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