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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프로토타입: 번아웃 없이 실제로 데모할 수 있는 작은 제품 만드는 법

단 10일 동안만 쓸 ‘일회용 프로토타입’을 설계·구현해서, 진짜 고객 인사이트와 설득력 있는 데모, 그리고 분명한 의사결정을 얻는 방법을 알아봅니다. 팀을 태우지 않고 빠르게 배우는 접근법입니다.

소개

초기 단계 제품 대부분은 요란한 폭발로 죽지 않습니다. 조용하고 질기게 이어지는 지루한 소멸로 끝납니다.

처음엔 에너지와 큰 비전으로 시작합니다. 과하게 만들고, 과하게 다듬고, 과하게 고민합니다. 몇 주가 몇 달로 늘어납니다. “MVP”는 어떻게든 반쯤 출시한, 정작 본인은 정 붙였지만 너무 지쳐서 고칠 엄두가 안 나는 어정쩡한 무언가가 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고객이 진짜로 신경 쓰는지는 모른 채입니다.

‘열흘 프로토타입’은 이 패턴에 대한 해독제입니다.

“진짜 제품의 축소版”을 출시하려고 애쓰는 대신, 처음부터 일회용 프로토타입을 2–10일 안에 만듭니다. 목적은 오직 학습, 검증, 데모입니다. 프로덕션에 올릴 게 아닙니다. 의사결정을 위한 도구입니다.

이 글에서는 열흘 프로토타입이 정확히 무엇인지, 구체적인 데모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어떻게 설계할지, 누가 참여해야 하는지, 어떤 툴을 써야 하는지, 그리고 이 접근이 어떻게 번아웃 없이 더 빨리 배우게 해주는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열흘 프로토타입, 정확히 무엇인가

열흘 프로토타입의 특징은 세 가지입니다.

  • 작다 – 아주 특정한 가설 세트를 검증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화면만 만듭니다.
  • 빠르다 – 시작할 때부터 2–10일로 타임박스(timebox)된 집중 작업입니다.
  • 일회용이다 – 제품의 “아기 버전”이 아닙니다. 배우기 위해 만든 산출물일 뿐이고, 버릴 걸 전제로 만듭니다.

목표는 “론칭”이 아닙니다. 목표는 고객과 문제에 대해 검증된 학습을, 가능한 적은 시간과 비용으로 최대한 많이 얻는 것입니다.

이 사고방식은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원칙에서 바로 나옵니다. MVP를 “첫 릴리스”가 아니라 비즈니스 실험으로 보는 것이죠.

  • 어떤 고객 세그먼트가 관심을 가질 거라고 생각하는가?
  • 어떤 문제가 돈을 낼 만큼 아플 거라고 보는가?
  • 우리가 맞았다면, 고객에게서 어떤 행동이 관찰될 것으로 기대하는가?

열흘 프로토타입은 이 가정들을 가장 싸고 명확하게 검증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프로토타입을 ‘아기 제품’처럼 대하는 걸 멈춰라

대부분의 팀은 프로토타입을 갓 태어난 제품처럼 대하다가 스스로를 망칩니다.

  • 코드 품질과 아키텍처를 너무 일찍 걱정합니다.
  • 아무도 보지 않은 UI 요소를 공들여 다듬습니다.
  • 고객에게 보여주기도 전에 “이것만 더” 하며 온갖 시스템을 붙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가 “제품 같다”는 느낌이 들면, 그걸 죽이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이미 너무 많이 투자했고, 정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열흘 프로토타입 마인드는 이것을 완전히 뒤집습니다.

  • 어차피 삭제될 거라고 가정합니다. 그러면 정말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과감히 대충 해도 마음이 편합니다.
  • 순수함보다 가시성을 최적화합니다. 내부는 덕트 테이프로 붙어 있어도, 겉으로 봤을 때 충분히 진짜 같고 쓸모 있어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 이걸 마일스톤이 아니라 가설 검증 도구로 봅니다. 성공 기준은 “잘 돌아간다”가 아니라, “의사결정을 바꿀 만한 무언가를 배웠다”입니다.

“이 프로토타입은 절대 프로덕션에 안 간다”는 걸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무엇을 만들고 무엇은 뻥으로 때울지 훨씬 좋은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구체적인 데모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설계하라

열흘을 가장 빨리 낭비하는 방법은 그냥 “일단 만들어보자”입니다. 대신 스크립트로 시작해야 합니다.

“열흘 뒤, 고객이나 이해관계자에게 정확히 무엇을, 어떤 순서로 보여주고 싶지?”

데모 시나리오를 먼저 잡으면 다음을 분명히 정의하게 됩니다.

  1. 누구에게 데모할지 (예: 창업자, 세일즈 리더, 타깃 고객 3명 등)
  2. 그들이 자기 말로 설명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3. 데모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해봄으로써 가치를 느끼게 할지
  4. 우리의 가정을 검증하기 위해 어떤 질문을 할지

데모를 정의하는 간단한 방법은 이런 “10일차 데모 스크립트”(1–2페이지)를 쓰는 것입니다.

  • 오프닝: 문제를 어떻게 프레이밍할지
  • 워크스루: 사용자가 클릭해보는 핵심 플로우
  • 논의: 가격, 도입 방식, 현재 사용 중인 대안에 대해 무엇을 물어볼지

이 스크립트를 만들고 나면, 그때부터는 역산하면 됩니다.

10일차 데모에 필요하지 않은 건, 만들지 않는다.

이 제약은 강력합니다. 초기 10일 동안 대시보드, 설정 화면, 각종 연동, 관리자 툴 같은 걸 만드는 유혹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그런 것들은 학습에 거의 아무 기여를 하지 않습니다.


팀은 작게, 기술 리더 중심으로 꾸려라

열흘 프로토타입은 기술 아키텍트가 프로덕트 담당과 아주 밀착해서 이끌 때 가장 빠르게 움직입니다. 풀 feature 팀이 아니라, 스몰 스트라이크 팀에 가깝습니다.

전형적인 구성은 이렇습니다.

  • 테크 리드 / 아키텍트 – 엔드 투 엔드 구현을 책임지고, 툴 선택을 주도하며, 어디를 대충 할지 결정할 권한을 가집니다.
  • 프로덕트 오너 – 문제 정의, 타깃 사용자, 데모의 성공 기준을 명확히 합니다.
  • 선택적 인력 1–2명 – 정말 필요할 때 디자이너나 추가 엔지니어 한두 명 정도.

왜 이렇게 작게 가야 할까요?

  • 조율 비용이 적습니다. 무거운 세레머니나 복잡한 의존성 조정할 시간이 없습니다.
  • 책임 소재가 분명해집니다. 한 명의 기술 리더가 프로토타입 전체를 머릿속에 담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 조율해야 할 의견이 줄어듭니다. 논쟁은 속도를 죽입니다. 작은 팀일수록 불필요한 논쟁이 적습니다.

열흘 프로토타입의 ‘프로세스’는 아주 단순해도 됩니다.

  • Day 0–1: 데모 스크립트, 핵심 가설, 제약 조건에 대해 정렬
  • 매일: 15분 정도 짧은 체크인으로, 예상보다 어려운 부분에 맞춰 범위를 조정
  • Day 9–10: 데모 리허설, 스토리 정교화, 학습 포인트 정리

인디 해커 스타일 툴 스택을 써라 (엔터프라이즈 스택 말고)

일회용 프로토타입을 만들면서 다음 같은 일을 하고 있다면, 뭔가 잘못된 겁니다.

  • Kubernetes 클러스터를 띄우고
  • 완벽한 도메인 모델을 설계하고
  • 복잡한 CI 파이프라인을 짜고 있다면

열흘 프로토타입에서는 그 반대로, 가능한 한 많은 인프라를 외부에서 ‘훔쳐와야’ 합니다. 시간은 핵심 가설에 써야지, **배관공사(plumbing)**에 쓰면 안 됩니다.

쓸 만한 스택 예시는 이렇습니다.

  • 노코드 / 로우코드: Bubble, Webflow, Adalo, Retool
  • Backend-as-a-Service(백엔드 서비스형): Firebase, Supabase, Appwrite
  • 인증 / 결제 / UI: Auth0, Clerk, Stripe, Stripe Checkout, Tailwind UI
  • 자동화 / 글루(Glue): Zapier, Make, n8n

이런 툴들을 활용해서:

  • 복잡한 로직을 워크플로·자동화로 ‘뻥’ 처리하고
  • 백엔드를 직접 짜지 않고도 데이터를 저장·조회하고
  • UI 컴포넌트를 직접 만들지 말고, 검증된 컴포넌트를 가져다 씁니다.

간단한 기준을 하나 세워두면 좋습니다.

써드파티 툴이 하루 만에 80% 수준까지 해줄 수 있다면, 그걸 쓴다. 직접 코드는 **우리 가설에 진짜로 고유한 20%**에만 쓴다.

기억하세요. 우리가 지금 짓는 건 대성당이 아니라, 대성당을 지을 ‘가치’가 있는지 결정하기 위한 골판지 모형입니다.


열흘을 ‘최대 학습’ 구조로 설계하기

열흘짜리 실험을 타임박스하는 현실적인 방법을 하나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Day 0–1: 실험 프레이밍

  • 우리의 핵심 가설을 정의합니다.
    예: “세일즈 매니저들은 통화 노트를 자동으로 요약해 CRM 필드에 채워주는 기능에 돈을 낼 것이다.”
  • 10일차 데모 스크립트를 작성합니다.
  • “성공 지표”가 아니라 학습 지표를 정합니다.
    예: 인터뷰한 5명 중 3명은 현재 워크어라운드를 버리고 싶다고 말한다, 2명 이상은 돈을 낼 의향이 있다고 말한다 등.
  • 제약을 못 박습니다. 추가 기능 없음, 종료일 고정, 사용할 툴 미리 확정.

Day 2–7: 데모 경로만 만든다

  • 핵심 플로우에 필요한 딱 그만큼의 UX만 만듭니다.
  • 에러 처리는 대충이라도 괜찮으니, **해피 패스(happy path)**를 끝까지 관통하도록 구현합니다.
  • 필요한 곳은 더미 데이터나 스크립트로 때웁니다. 사용자에게 굳이 밝힐 필요는 없지만, 우리 머릿속에서는 “이건 가짜”라고 명확히 구분합니다.
  • Day 5–6 즈음에 내부 데모를 돌려서, 사용자가 헷갈릴 지점을 미리 찾습니다.

Day 8–9: 코드를 다듬지 말고, ‘이야기’를 다듬어라

  • 온보딩과 첫 2–3클릭을 매끈하게 만듭니다. 전체 완성도가 아니라, 첫인상에 집중합니다.
  • 우리가 들려줄 스토리를 정교하게 다듬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었고,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이걸로 무엇이 가능해지는지.
  • 데모 이후에 할 인터뷰 질문 리스트를 준비합니다.

Day 10: 데모 실행 및 의사결정 수집

  • 실제 이해관계자나 타깃 고객에게 라이브 데모를 합니다.
  • 구체적으로 묻습니다. “오늘부터 쓰시겠나요?”, “현재 워크플로에 어떻게 들어갈까요?”, “이걸 도입하면 무엇을 대체하게 될까요?”
  • 데모가 끝나면 짧게 회고합니다.
    “무엇을 배웠는가?”, “무엇이 가장 의외였는가?”, “여전히 모르는 건 무엇인가?”

그리고, 이게 정말 중요한데, 그 자리에서 결론을 내립니다.


피벗, 진행, 또는 종료 — 감정 소모 없이

열흘 프로토타입이 진짜 가치를 발휘하는 순간은 마지막에 명확한 의사결정을 강제할 때입니다.

  1. Proceed(진행) – 신호가 충분히 강해서, 이제 “진짜 구현”에 투자할 가치가 있을 때
  2. Pivot(피벗) – 중요한 걸 배웠지만, 방향이나 타깃을 바꿔야 할 때
  3. Kill(종료) – 계속 투자할 만큼의 당김(pull)이나 흥분이 없을 때

열흘 만에 아이디어를 접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성공입니다. 다음을 피한 것이니까요.

  • 몇 달짜리 어정쩡한 개발 마라톤
  • 잘못된 가설에 정 붙이고 끌려다니는 감정적 소모
  • 이미 좀비가 된 프로젝트를 질질 끌다가 팀 전체가 번아웃 나는 상황

처음부터 이렇게 프레이밍해두면 두려움이 줄어듭니다.
팀 모두가 “우리가 완벽하게 만드는 게 목표가 아니다, 배우고 결정하는 게 목표다”라는 걸 알고 시작하는 겁니다.


열흘 프로토타입이 번아웃을 막는 방식

번아웃은 단순히 오래 일해서 생기지 않습니다. 많이 노력하는데도, 제대로 나아가는 느낌이 없을 때 특히 심해집니다.

열흘 프로토타입은 다음 방법으로 번아웃을 줄여줍니다.

  • 엄격한 타임박싱 – 종료일이 분명합니다. 끝이 안 보이는 장기전에 끌려들어가는 느낌이 없습니다.
  • 낮은 폴리시 기대치 – 애초에 프로덕션 퀄리티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습니다.
  • 명확한 의사결정 시점 – 10일차에 피벗/진행/종료가 정해진다는 걸 모두 알고 있습니다.
  • 잦은 작은 성취감 – 5–7일차 내부 데모는 “우리가 뭔가를 만들고 있다”는 눈에 보이는 진전을 줍니다.

게임의 룰이 처음부터 명확하면, 짧은 시간 동안 강하게 몰입하더라도 “이게 대체 언제 끝나나” 하는 정서적 부담 없이 일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

열흘 프로토타입은 영원히 대충 하자는 전략이 아닙니다.
지금 이 시점에 어디를 과감히 건너뛸지를 잘 선택해서, 이 아이디어가 정말 풀스펙 빌드를 해볼 가치가 있는지 먼저 검증하자는 전략입니다.

프로토타입을 일회용 실험으로 보고, 구체적인 데모 시나리오에 맞춰 설계하고, 작고 기술 리더 중심의 팀으로 움직이며, 인디 해커 스타일의 현대적 툴 스택을 적극 활용하면, 적은 낭비로 많은 학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팀의 에너지를 지킬 수 있습니다.
몇 달씩 불확실한 개발을 질질 끌기보다, 짧고 집중된 스프린트로 진짜 인사이트와 구체적인 의사결정을 얻고 끝낼 수 있습니다.

다음에 “다음 분기 동안 MVP를 만들어볼까?”라는 생각이 들면, 이렇게 물어보세요.

“열흘 동안 아주 작은 일회용 프로토타입을 만든다면, 우리가 이후에 무엇을 만들지 바꿔놓을 만큼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10일차 데모를 설계하고, 타이머를 맞추고, 딱 그만큼만 만들어 보세요.
우리에겐 지금, 결과를 내지 못하는 완벽한 제품보다, 불완전하지만 많은 걸 가르쳐주는 프로토타입이 더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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